"사적 복수 정당한가"…연상호·탁재영이 '돼지의 왕'으로 던진 질문 [인터뷰+]

입력 2022-03-29 14:54   수정 2022-03-29 15:43


티빙 오리지널 '돼지의 왕'은 20년 전 친구로부터의 메시지와 함께 시작된 의문의 연쇄살인으로 '폭력의 기억'을 꺼내게 된 이들의 이야기를 담은 스릴러 드라마다.

'부산행', '반도', '지옥' 연상호 감독의 2011년 작품인 동명의 애니메이션을 원작으로 한다. 12부작인 '돼지의 왕'은 지난 18일부터 공개를 시작해 4화까지 티빙에 올라온 상태다. 드라마 공개 후 각색과 배우들의 연기에 대한 반응이 뜨겁다.

극 중 김동욱은 20년 전 학교 폭력의 기억을 잊지 못하고 사는 황경민 역을 맡아 가해자들을 직접 처단하는 날 선 연기를 펼친다. 20년 전 친구로부터 받은 메시지를 추적하는 형사 정종석 역은 김성규가 맡았다. 종석의 경찰대 선배이자 원칙주의자 형사인 강진아 역은 채정안이 열연 중이다.

연상호 감독과 각본을 맡은 탁재영 작가는 29일 온라인 인터뷰를 통해 '돼지의 왕'은 단순히 학교 폭력(이하 학폭)을 다루는 작품이 아닌 폭력에 대한 근원적인 문제를 꼬집고 시청자들에게 고민을 던지는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탁 작가는 "세상은 왜 이렇게 서열화 되어 있고 폭력이 존재하느냐에 대해 이야기를 끌고 가기 위해 학폭이란 소재가 필요했고, 4부까지는 학폭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중후반으로 갈수록 더 큰 문제들을 제기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연 감독은 "이성과 감정이 동일한 메시지를 가지고 작동하는 작품이 흥미 있고 재밌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며 "'돼지의 왕'이 그런 작품이라고 생각한다"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이어 "드라마에 나오는 복수는 말도 안 되고 큰일 날 일이다. 황경민이 겨눈 복수의 칼날이 지금은 가해자에게 향해 있으나 뒤로 진행되며 복잡해진다. 피해와 가해가 실타래처럼 엉켜 있어서 뭐가 진짜인지 모를 상황이다. 정당성이라는 말과는 전혀 다른 결말이 이어질 것"이라고 귀띔했다.

탁 작가는 "이 작품을 하며 '복수의 행위가 응당한가'라는 고민하게 됐는데, 저는 전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런 질문을 시청자들에게 던지고 싶었다"며 "다른 이를 해함으로써 트라우마를 극복하려 하는 것이 정당한지, 많이 고민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고 덧붙였다.

'돼지의 왕'의 관전 포인트에 대해 탁 작가는 "현재는 연쇄살인마를 추격하는 스릴러의 내용이라면 후반부에는 이 모든 것이 단순한 사건이 아님을 알게 되면서 오는 심적 변화가 그려진다. 원작에서의 힘이 되는 메시지가 하나씩 드러나면서 깊이 있게 보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연 감독은 "아직 '돼지의 왕'이 제대로 등장하지 않았다"며 "원작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이 다음 화부터 등장한다"며 기대감을 자아냈다.


다음은 연상호 감독과 탁재영 작가와의 일문일답.

▶ 연상호 감독이 먼저 히든시퀀스 제작사 대표에게 '돼지의 왕' 시리즈화를 제안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연상호(이하 연) "탁 작가와는 예전부터 알던 사이라 작품을 준비하고 있을 때 '돼지의 왕' 이야기를 했던 것 같고, 두 편 정도 써보자고 했다. 1, 2화를 먼저 써서 제작사 대표에게 보여줬고, 대표가 대본을 보고 결정했다. 2부까지는 탁 작가와 같이 이야기하며 썼고, 제작사에 전달한 후에는 전혀 관여하지 않았다. 마지막 대본도 최근에 봤다."

▶ 원작의 팬들이 많은데 드라마화를 하면서 또 다른 재미를 이야기한다면 무엇이 있을까.

연 "원작은 학교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담겨 있다. 드라마 '돼지의 왕'은 연쇄살인 수사극이라는 새로운 장르 결합이 된 형태다. 색깔이 더 강하다. 그런 측면에서 아주 색다르게 볼 수 있는 부분일 것이다. 또 하나는 애니와 달리 생생한 배우들의 연기를 통해 볼 수 있다는 것이 차별성이자 재미다."

▶ 김동욱 배우와 김성규 배우의 연기 합이 인상적인 작품이었다. 캐스팅 과정은 어땠나.

탁재영(이하 탁) "대본을 쓸 때부터 어떤 배우들이 이 역할을 하는 게 좋을까 생각을 많이 했다. 캐릭터의 이미지와 성격, 어떤 느낌으로 시청자에게 다가갔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제작사와 많이 했다. 그에 맞는 분들을 캐스팅 해주셨다."

▶ 아직 4화까지 공개된 상태이지만 김동욱, 김성규 배우의 연기는 어떻게 봤나.

연 "김동욱의 연기가 인상 깊었다. 장르적으로 뿜어내는 것뿐만 아니라 정당성, 죄의식까지 표현했다. 처단자로서의 카타르시스 외에도 이 행동이 가진 죄의식까지 표현하려고 고민 한 것 같고 사려 깊은 연기라고 생각됐다. 김성규의 경우는 영화를 보는 느낌을 받았다. 후반부 더 큰 감정들이 보일 거 같아 기대가 많다. 생각해 뒀던 이미지가 있진 않은데, 두 배우가 캐스팅됐다고 했을 때 되게 좋은 캐스팅이 됐다고 생각했다고 기뻤다."

탁 "대본을 쓰면서 성인 역할의 연기가 힘들 거라고 생각했다. 성인들의 행동 동력이 20년 전 있었던 사건과 연결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글만 보면 '얘가 왜 이렇게 화를 내고 슬퍼하지?'라고 묻는 신들이 많다. 이해를 못 할 경우가 있을 텐데 배우들이 해석을 잘 해줘서 훌륭히 연기했다. 힘이 엄청나더라. 너무 좋게 봤다. 두 사람 다 대단하다."

▶ 원작과 달리 종석을 형사로 설정하고 스릴러 장르를 가미한 이유는 무엇인가.

탁 "이미 호평을 많이 받은 작품이고 팬들도 많아서 원작의 메시지를 재해석 하지는 않았다. 그저 원작이 사회 드라마 성격이 강했다면 드라마는 스릴러를 접목해 시청자가 더욱 흥미롭게 볼 수 있도록 하고 싶었다."

연 "원작은 드라마로 가기엔 내용이 매우 부족했다. 스릴러적 구성은 탁 작가와 같이 이야기한 부분이다. 그렇게 된다면 충분히 드라마 분량이 나오겠다고 생각했다. 낯설진 않은 장르였고, 워낙 재밌게 만들어 주셨다."

▶ 원작에 없는 강진아(채정안) 캐릭터를 만들어 넣은 이유는?

연 "내가 먼저 강진아 형사 캐릭터를 만드는 게 좋겠다는 얘기를 한 것 같다. 이 작품이 '뒤틀린 남성성의 결과에 따른 비극' 같은 느낌인데 시청자들을 따라가게 하려면 여자 형사가 그 잔혹성을 목도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작가에게 여 형사 캐릭터 이야기를 먼저 했다."

▶ 연 감독의 초창기 작품인 '돼지의 왕'이 시리즈화됐을 때의 우려는 없었나.

탁 "솔직히 상당히 걱정 많았다. 재밌게 볼 수 있게 리부트 해야 하는 상황에서 원작의 메시지, 주제나 의미와 가치를 훼손하지 않을까 우려가 컸다. 원작 메시지와 스릴러의 재미를 조합 시키면서 12화까지 끌고 갈 수 있을까 고민을 많이 했다. 원작에서 연 감독 메시지는 그대로 가지고 가자, 팬들도 재밌게 볼 수 있게끔 노력을 많이 했다."

▶ 원작 집필 당시 상상했던 황경민, 정종석의 미래와 드라마 속 내용이 비슷하다.

연 "가해자들의 모습이 원작에서 등장하지 않는데, 애니메이션이 나왔던 당시에 상당히 그들에 대한 질문을 많이 받았다. 탁 작가가 구상할 때도 가해자들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다. 이번 작품이 원작 애니메이션의 좋은 답이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 '돼지의 왕' 속 주인공들이 중학생 시절 학교 폭력의 기억을 되짚어가며 사건들이 전개되는데 이로 인해 학폭 피해 장면과 복수 장면이 다소 잔혹하게 그려졌다. 고민이 있었다면.

탁 "학폭 피해 장면은 아역 배우가 연기 하는 거라 걱정이 많았다. 혹시나 마음에 상처가 생기지 않을까 하고… 다행히 제작사에서 현장에 상담심리사를 상주하게 하고 아이들과 대화를 많이 했다고 들었다. 이것은 연기, 현실이 아니라고 말이다. 마음을 케어해주는 일들을 해서 그나마 안심했다. 원작에서도 중학생들의 이야기고, 개인적으로 생각하기에도 중학생 때 학폭이 가장 많이 벌어졌던 거 같다. 솔직하게 다루고 싶었다. 안 그러면 가짜가 될 것 같고 거짓말을 하게 될 것 같았다."

▶ 원작과 드라마가 가진 메시지에 차이점이 있을까.

연 "대본을 전부 보진 못했다. 10화까지 본 상태다. 메시지 면에서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계급사회 속에서의 현상, 감정들을 잘 담아주려고 노력한 거 같다."

탁 "크게 재해석하거나 비틀어서 다른 메시지를 주려 하지 않았다. 원작의 메시지가 너무 울림이 있었고 시간이 흘러도 머릿속에 떠오르는 주제였기에 굳이 좋은 메시지를 바꿀 필요는 없겠더라. 원작처럼 시청자에게 보여지도록 하는 게 작가의 임무가 아닐까 생각했다."

▶ 애니메이션이 만들어졌을 때도 학교 폭력 문제가 심각했지만, 지금에도 이 문제가 지속되고 있다.

연 "당시에도 학폭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했던 것 같다. 성과주의 사회 풍조와 학생들에게 학교가 너무 전부인 게 문제다. 학교란 한 사람이 경험하는 일부인데 마치 전부처럼 인지해서 문제다. 이게 자기에게 전부인 세계가 아니라는 걸 스스로 인지해야 극복할 수 있을 것 같다.

▶ 학폭 소재는 이미 여러 작품에서 다뤄진 바 있다. '돼지의 왕'을 통해 재차 학폭을 꺼낸 이유는 무엇일까.

탁 "'돼지의 왕'은 단순히 학폭만을 다루는 작품이 아니라는 생각이다. 폭력에 대한 근원적인 문제를 다루고 있다고 생각한다. 세상은 왜 서열화되어있고 폭력이 존재하느냐와 같은 큰 주제를 다룬다. 이를 위해 학폭이란 소재가 필요했고 4부까진 학폭에 초점이 맞춰지나 중후반 갈수록 더 큰 문제들을 제기하고 싶었다."

연 "이성과 감정이 동일한 메시지를 가지고 작동하는 작품이 흥미 있고 재밌다고 생각한다. '돼지의 왕'이 그렇다. 학폭, 사회의 계급주의를 잘 조합해 보여줄 수 있는 작품이다."


▶ 폭력에 대한 응당한 대가는 무엇일까 생각하게 되는 작품이다.

연 "애니메이션이 나온 후 학폭 관련해 여러 전문가와 토론회 많이 다닌 기억이 난다. 인상적인 건 학생들에게 학교는 전부다. 가정에도 속해 있으나 집에 가면 잠만 자니 역할이 줄어든다. 사람이 한 커뮤니티에 올인하는 것보다 여러 커뮤니티에 인볼브(참여)될 수 있는 게 중요 한다는 생각이다. 한 커뮤니티에 있는 것은 폭력에 노출되기 쉬운 구조다. 비슷한 힘을 가진 많은 커뮤니티에 속하는 게 좋다."

탁 "결국은 연대다. 내가 받은 상처와 다른 사람이 받은 상처를 얼마나 이해하고 극복하기 위해 도움을 주고받느냐다. 그런 연대에서 또 다른 폭력이 발생하는 경우가 많기에 올바른 판단으로 나의 연대가 나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곳인지 해인지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 후반부로 갈수록 복수에 대한 딜레마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고 했다.

연 "영화에서 나오는 복수는 말도 안 되고 큰일 날 일이다. 황경민이 겨눈 복수의 칼날이 지금은 가해자에 향해 있으나 뒤로 진행되며 복잡해진다. 그 칼날이 사실은 다른 방향으로 가기도 한다. 피해와 가해, 실타래처럼 엉켜있어서 뭐가 진짜인지 모를 상황. 정당성이라는 말과는 전혀 다른 결말과 진행이 앞으로 이어질 것이다."

탁 "복수의 행위가 응당한가, 나는 전혀 아니라고 생각. 다른 이를 해함으로써 트라우마를 극복하려 것이 정당한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 복수하며 느끼는 카타르시스에 대한 배신감까지 느낄 수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 작품시청 연령이 19금이었다. 시청자 폭이 좁아질 수 있다는 점도 고려했을 것 같은데 19금을 강행한 이유는.

탁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복수하며 연민과 카타르시스로 시작했다면 5, 6부 이후부터는 시청자가 느끼는 카타르시스와 이들이 행하는 사적인 복수가 정당한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그 도덕적 딜레마를 시청자들이 같이 생각해 봤으면 했다. 어른들을 위한 스릴러라고 생각을 했기 때문에 적나라하더라도 의미적 차원에서 후반부로 갈수록 전달하고 싶었다."

▶ TV로 방영되는 것이 아닌 티빙 단독 공개라서 오는 이점도 있었을 것 같다.

탁 "글을 쓸 때 자유롭게 썼다. 대사, 상황, 리액션 등 '다른 지상파 매체에서 가능한 건가?'라고 생각해 보면 못 나왔을 것 같다. 자기검열 없이 자유롭게 쓴 것 같고, 이후 관계자 여러분들에게 피드백을 받으며 조금씩 수정하는 작업을 했다. 경민의 복수를 그릴 때도 시청자들이 경민을 통해 카타르시스를 느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자기가 당했던 방식을 그대로 되갚는 것으로 택했다. 하지만 그 통쾌함을 전달하는 작품이 아니기에 그 감정에 대한 고민을 같이 느낄 수 있지 않을까."

▶ 연 감독님은 평소에 사회적인 메시지나 현상에 대해 관심이 많은 것 같다.

연 "최근엔 혐오로서 모이게 되는 이데올로기에 관심을 갖고 있다. 이데올로기 형성 과정이 여러 가지 있는데 혐오로 뭉쳐지는 것의 정체는 뭘까. 그런 생각이 작품으로 반영될 거 같다. 시간 날 때마다 쓰려고 노력한다. 쓰고 있는 작품에 자연스럽게 반영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 드라마부터 영화, 다양한 OTT 등 각종 플랫폼을 섭렵했고 영화, 드라마 다양한 매체에서 활약하고 있다.

연 "개인적으로 이 업계에 데뷔하면서 '고정관념을 갖지 말자', '창작하는 노동자로서의 삶을 살자'란 생각을 많이 했다. 다양한 플랫폼에서 여러 제안을 주셨을 때, 맡은 바 성실하게 임해서 하자는 게 여러 분야를 할 수 있었던 계기인 것 같다."

▶ 연 감독 영화 중에 드라마화하면 좋겠다는 작품이 또 있을까.

연 "제가 했던 작품 중 다 드라마화가 된 거 같다. 예전에 했던 단편으로 만들고 싶다는 생각 꾸준히 있다. 몇편은 장편화 할 생각이다."

탁 "개인적으로 '염력'을 하고 싶다. '염력'도 히어로물에 사회적 문제를 다루는 작품이다. '돼지의 왕'이 시청자들에게 호응을 얻는다면 '염력'도 그런 면에서 의미 있는 작품으로 잘 쓸 수 있지 않을까."

▶ 연 감독님의 작품들이 문화적 배경 등이 다른 해외에서 인기와 관심을 받는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나.

연 "미국에 있는 친구가 어떻게 봤는지 모르겠지만 '돼지의 왕'을 봤다고 하더라. 해외에서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다. 장르적으로도 그렇고. 따돌리는 행위는 미국에서도 있는 일이라고 한다.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라는 생각한다. 작품 소재를 찾을 때, 내가 사는 세상에서 찾으려고 노력한다. 내가 사는 세상이 다른 세상(나라)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이런 작품의 반응을 보며 느낀다."

▶ 남은 회차에서의 관전 포인트는?

탁 "캐릭터의 변화일 것 같다. 현재는 연쇄살인마를 추격하는 스릴러라면, 주인공들이 진실을 알게 됐을 때 심적인 변화가 생긴다. 원작에서의 힘이 되는 메시지가 하나씩 드러나면서 깊이 있게 보실 수 있을 것 같다."

연 "아직 '돼지의 왕'이 제대로 등장 안 했다.(웃음) 원작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이 다음 화부터 등장한다."

김예랑 한경닷컴 기자 yesr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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